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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가 탈시설해야 하는 이유

시설 밖으로 나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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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탈시설 로드맵 발표, 장애인을 대하는 국가의 태도부터 반성해야 
2009년 서울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장애인에 대한 탈시설 정책은, 지난 2021년 8월 2일 중앙정부 차원에서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 지원 로드맵(아래 탈시설 로드맵)>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2007년 우리 정부가 UN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하고 무려 14년이 걸렸다. UN장애인권리협약에 가입하면 국제법과 국내법이 같은 효력을 갖게 되고, 가입 당사자국인 우리나라도 협약을 지켜야 한다. 협약 제19조는 ‘자립적 생활 및 지역사회에의 동참을 위한 탈시설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지원하라.’고 규범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무려 14년간 UN장애인권리협약을 지키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정과제 42번으로 장애인의 지역사회 참여와 탈시설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으나 이도 무려 4년 반 동안 지켜지지 않다가, 임기를 6개월여 남겨 놓은 시점에서 탈시설 로드맵이 발표되었다. 늦었다. 너무 늦었다. 정말 너무 늦었다.

더욱이 발표된 탈시설 로드맵을 들여다보면, 가슴이 막히는 듯하다. 현재 장애인거주시설에 살고 있는 2만 9천 명의 사람들을 2041년까지 탈시설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물론 준비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평균 입소 기간이 18.9년인 사람들에게 앞으로 20년을 더 기다리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잔인한 게 아닌가. 보건복지부의 발표 자료에는 ‘스웨덴이나 캐나다 등 서구유럽은 30~40여 년이 걸렸다’고 설명을 붙였다. 스웨덴은 1940년, 영국은 1960년대, 미국은 1970년대부터 탈시설을 추진했다, 이들이 30~40년 걸렸다는 것은, 20세기의 이야기이다. 지금은 2021년이다. 부끄럽기 짝이 없는 근거 논리이다.

노르웨이 정부 공식위원회 보고서(1985)에 따르면, “시설에서 발달장애인이 처해 있는 생활 여건은 인간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것”이라고 보고했고, 뉴질랜드인권위원회는 1950년부터 1992년에 걸쳐 국가가 운영하는 병원과 시설에서 아동과 성인에게 자행한 학대에 관한 조사를 실시하여 보고서를 발간하였는데, 제목이 “시설은 학대의 공 간이다 – 1950~1992년에 걸쳐 조사한 국립 시설 장애인들의 삶(“Institutions are places of abuse”: The experiences of disabled children and adults in State care between 1950–1992. 브리짓 머핀 베이치 박사 및 제니 콘더 박사 공저(2017))”이다. 거주시설이라는 공간 이 돌봄과 사랑을 제공하는 공간이라고 믿었던 뉴질랜드 국민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우리 정부는 먼저 진정성 있는 반성부터 해야 한다. 장애나 질환이 있다는 이유로 격리·배제의 방식으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장애인을 그렇게 대우했다. 가족에게 책임을 반가하거나 시설에 격리했다. 그리고 오랜 기간 그 정책을 고수해왔다. 
“그들의 인간성은 훼손되었습니다. 그들은 가족과 분리되어 잠재력, 안락함, 안전 및 존엄성을 강탈당했습니다. (중략) 오늘날 우리는 발달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더 이상 ‘다른 사람’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들은 우리 모두와 같은 희망과 꿈을 가진 소년과 소녀, 남성과 여성입니다. 온타리오에서 모든 개인은 우리의 지원, 존중 및 보살핌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2013년 12월 9일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캐슬린 윈 총리는 발달장애인을 시설에 수용했던 역사를 반성하며 기자회견을 갖고 공식 사과했다.
장애와 질환을 가진 사람들을 대하는 국가의 태도는 종국에는 모든 국민들을 대하는 국가의 태도와 일치한다. 장애인의 탈시설은 결국 우리 모두가 ‘시설 말고 내 집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국가정책을 의미한다. 
 
탈시설 로드맵의 수혜자는 누구여야 하는가?
2012년 8월 21일 광화문 지하보도 안에서 시작된 “장애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제 폐지, 수용시설 폐지” 운동은 3천일이 넘는 과정을 통해서 정말 안 해 본 것이 없는 투쟁이 되었다. 정부청사 앞에서 ‘뻥튀기’차를 섭외해 부양의무제를 폐지한다고 하고서는 폐지하지 않는 정부에게 뻥튀기를 즉석에서 선물했다. 제발 약속을 지켜달라고. 수많은 시민들의 엽서와 종이접기를 모아서 청와대에 전달했다. 탈시설 한 장애인들의 증언을 모아 국회 의원들에게 전달했다. 탈시설이 뭐예요? 라고 묻는 시민들에게, 지난 10년의 세월을 온라인/오프라인에서 만났다. 그렇게 해서 탈시설 로드맵이 탄생했다.

그렇게 10년을 넘게 외쳤던 결과로 만들어진 탈시설 로드맵은 어찌 보면 너무 소중한 결과물이다. 그러나 정부의 로드맵이 발표되자 수많은 비판 성명서들이 장애인단체와 시민사회단체에서 쏟아져 나왔다. 탈시설 로드맵이 장애인 당사자를 위하기보다는 ‘시설 운영집단의 이권 보장을 위한 정책’으로 보인다는 점, 정신장애인은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은 점, 지역사회에 나와 살아갈 수 있는 기반 여건에 대한 구체적 지원내용이 부족한 점에서였다. 탈시설 정책의 제일 중요한 철학과 가치는 장애인의 물리적 시설이라는 공간을 벗어나는 것뿐 아니라, 시설 전문화에서 벗어나 장애인의 자기 삶에 대한 권한을 되찾는 것을 의미한다. 공급자에게 전적으로 빼앗겼거나 위탁되어 있던 권한이 장애인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발표내용을 보면, UN이나 EU(유럽연합)에서 매우 우려하는 ‘위성화된 소규모 현대적 시설’로의 시설 쪼개기와 ‘전문화’라는 이름으로 또다시 중증장애인을 선별·격리하는 정책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더욱이 예산은 없이 정책만 나열한 수준이라서 이행가능성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우려된다. 시설 운영집단의 눈치를 보느라 ‘탈시설’이란 단어를 사용하기를 부담스러워하는 보건복지부가 좀 힘을 냈으면 좋겠다. 탈시설 정책의 수혜자는 누구여야 하는가? 나는 이 정부가 끝나기 전에 주객이 전도되지 않고, 이권 집단의 눈치를 보지 않는, 국제규약과 인권 모델에 기초한 탈시설 로드맵 업그레이드 버전을 기대한다. 그리고 국회에서는 하루빨리 장애인의 탈시설 지원법이 제정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시설에 살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하루가 급하다. 2041년에 완료가 아니라 10년 내, 아니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우리 모두는 늙고, 시설 건물 안에서 밖으로 한 번 나가기를 열망하는 장애인들도 늙고 있다. 
 
*이 원고는 <한겨레21> 제1376호에 실렸던 원고 중 일부를 발취한 것입니다.
작성자글. 김정하 /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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