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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의 문제, 이젠 전 국민을 살펴야 한다

국립정신건강센터의 위상변화를 듣다

본문

글과 사진. 채지민 기자
 
 
 
코로나19로 모든 게 점령된 세상이기에, 이젠 예외인 공간을 찾기도 힘들어진다. 그렇다면 이만큼 힘겨워지는 국민 모두의 정신건강은 누가 보살피고 책임져야 할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국립정신건강센터를 찾았다. 우리를 맞이한 이는 <함께걸음> 독자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이영문 선생님이다. 아주 오랜 기간 동안 <함께걸음> 지면에 매달 한 편의 영화 내용을 소개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눈(시야)과 감성을 넓혀주셨던 바로 그 얼굴이다. 그가 국립정신건강센터 센터장 취임 1년이 된 날에 취재기자를 맞이했다. 반가움만큼 진솔한 문답이 가능해진 느낌이다. 센터의 위상과 지향점을 센터장의 음성으로 재확인한다.
 
 
코로나19, 모든 걸 바꿨다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국립정신건강센터(아래 센터)는 현대식 신축 건물로 재개장한 후 4년 동안, ‘정신병원’이라는 기존의 낡은 이미지를 완전히 벗고 명칭 그대로 우리나라의 ‘정신건강’을 책임지는 큰 위상을 확립했다. 정신질환 또는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만의 공간이 아닌, 국민 모두가 겪고 있는 일상의 스트레스와 같은 정신(멘탈) 관련 모든 영역을 총괄하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게 된 것이다. 2020년 한 해 동안 센터의 책임과 역할은 몇 배나 더 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로나19의 시발점으로 지목되는 청도대남병원 사태가, 지금의 센터를 완전히 다른 시스템으로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제가 센터장으로 부임한 게 작년 11월이었고, 연말연시의 크고 작은 행사와 각종 회의가 모두 마무리될 무렵이었어요. 날짜도 기억합니다. 2월 19일이었는데, 그날도 저녁식사 잘하고 저녁회의를 끝낸 뒤 퇴근하려던 때였어요. 다급한 소식이 날아왔습니다. ‘청도대담병원에 환자(확진자)가 두 명 발생했다. 정신장애인이다.’ 처음엔 두 명이었고, 그때부터가 시작이었어요. 일단 현장관리와 확인을 위해 전문의 두 명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권역별 국립병원 다섯 곳 병원장들을 모아 긴급회의를 했죠. 그때까지는 양성판정을 받은 환자 빼고, 음성인 환자들만 따로 분리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코로나의 실체를 모를 때였으니까요.”
권역별 어느 병원의 환자들을 어느 병원으로 이송하고, 어느 병원을 집중치료를 위한 병동으로 만들자는 수준의 논의가 진행되던 이삼 일 후 새벽, 또 하나의 급전이 날아왔단다. ‘환자가 10명이 아니라 106명이다.’ 언론에는 아직 나가지 않은 이 소식은 한마디로 날벼락과 같은, 엄청난 사태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 돼버렸다.
“확진된 정신장애인들을 아무데서도 안 받아주는 거예요. 심지어 국립병원들도 손사래를 치며 받지 않았습니다. 불가피하게,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음압병실이 몇 개 갖춰져 있었기에, 여기 센터로 중증의 확진자들부터 이송했습니다. 사망자가 연이어 일곱 명까지 발생하던 시점에, 센터로 이송된 이후에는 지금까지 더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죠. 그렇게 전국의 이백여 명의 정신장애인 확진자들이 센터에서 무사히 치료를 마쳤습니다.”
코로나 사태는 ‘탈시설’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도 큰 영향을 끼쳤다. 현재와 같은 집단감염사태에선 제일 먼저 희생당하는 게 정신장애인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또 다시 확인된 것이다.
“폐쇄된 상태에서 장기입원을 하다 보니 완전한 무력감에 빠져 있고, 영양상태도 최악일 수밖에 없어요. 보호자들은 버리고 갔고, 그렇다 보니 완치가 된 다음에 돌아갈 곳이라곤 코로나에 감염됐던 바로 그 지역 그 자리밖에 없게 됩니다. 아무리 사후방역을 철저히 했다고 해도, 감염내과 의사들의 입장에서 봤을 땐 이게 말이 안 되는 거죠. 이런 구조가 우리나라의 현재 의료복지 상황인 겁니다.”
센터는 국가에서 45억의 긴급지원을 받아, 센터 한 층 전체를 음압병동으로 만드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음압병동이 생겨나는 것이다. 국립의료 원장, 질병관리청장, 복지부 장관과 차관 모두 센터에 같은 요청을 했고,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 예산이 일사천리로 집행됐다고 한다. 사태를 직접 겪고 보니, 어느 정도 엄중한 상황인지를 정부부처 책임자들 모두가 절감했다는 뜻이 된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니, 올해는 코로나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한 게 없는 것 같아요. ‘정신’이란 글자가 들어간 행사는 모두 여기 센터에서 진행되는 게 관례였어요. 전국의 의과대학생들과 간호학과 학생들의 실습도 모두 이 센터에서 진행되곤 했죠. 올해는 모두 다 취소됐습니다. 이제야 조금씩 회의가 열리기 시작하는 수준인데, 이러다 보니 올해 얻게 된 또 하나의 성과는 어떤 행사든 랜선으로 가능해진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 거예요. 비대면 학술회의와 비대면 토론회가 실제 열리고, 이젠 전 세계 어느 곳의 어떤 학회라도 랜선을 통해 참여하고 얼굴을 마주볼 수 있게 됐습니다. 스마트 병실의 현실화, 스마트 병원의 운영이 훨씬 빠른 시일 내에 완성되겠다는 기대도 가능해졌습니다. 첨단 아이티(IT)는 한국이 단연 빠르죠. 거기에다 K-방역에 대한 자부심을 얻게 된 건 큰 성과라고 판단합니다.”
 
 
 
↑ 이영문 센터장이 정말 반갑다며 <함께걸음>을 펼쳐보고 있다.
 
 
 
거꾸로, 반대로, 다르게, 입장을 바꿔 생각하자
이영문 센터장은 색다른 설명을 꺼냈다. 센터의 건물외벽 세 군데에 부착된 ‘국립정신건강센터’라는 로고가, 취재하던 날 기준으로 불과 일주일 전에야 부착됐다는 것이다. 첨단의 새 건물로 준공한 뒤 4년 동안 센터 본연의 운영을 계속 해왔는데, 왜 자신들의 조직 이름을 내걸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뜻밖의 답변이 돌아왔다. ‘정신’이라는 용어가 들어가면 주민들의 반대가 심해서, 허가권자인 해당 구청장이 그동안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4년 만에 자신의 명칭을 당당히 밝히는 게 가능해졌다는 건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센터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사람들이 알게 됐다는 것이고, 센터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 건지를 지역에서도 인정하게 됐다는 의미가 된다.
“코로나 장기화로 인한 스트레스와 우울을 요즘 ‘코로나 블루(우울)’라고 말하죠. 그건 정식 진단명이 아니라서 우리들은 ‘코로나 관련 정신건강문제’라고 표기합니다만, 정신건강문제가 얼마나 큰 화두인지를 이젠 일반 국민들이 다 알게 된 겁니다. 보건복지부에도 정신건강정책국이 생겼어요. 과 단위만 있었는데, 정부에서도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심각하게 파악하게 된 거죠. 정신장애인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센터장으로 부임했는데, 이젠 전체 국민의 정신건강을 다뤄야 할 임무가 더해졌습니다. 국민의 정신건강문제는 이미 고립과 우울에 의한 알코올 의존 확대 등으로, 실제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는 현상이라는 걸 다들 느끼고 계실 겁니다.”
이영문 센터장은 발언을 할 때마다 ‘거꾸로’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한다. 반대로, 다른 관점에서, 입장을 바꿔서 다르게 바라보고 생각하자는 부연설명이 항상 뒤따른다. 화제를 잠시 돌려 비대면 수업에 지친 청소년들 문제를 제기하자, 다시 그의 입에서 ‘거꾸로’가 등장했다. 그런데 아주 신선한 내용이 제시됐기에, 이 내용은 꼭 독자 여러분께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이 대화 도중에 떠오를 정도였다.
“교육부에 드리고 싶은 의견은 학교를 가야 된다는 거예요. 학교라는 곳은 죽으나 사나 당연히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세대들이 지금 교육행정을 맡고 있잖아요. 그런데 올해 온라인 비대면 수업을 전면적으로 실시하면서, 지식의 전달은 온라인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이 확인됐어요. 그런데 인성개발과 친구 사귀기 같은 건 불가능하다는 점도 역시 확인됐잖아요. 그러니까 ‘거꾸로’ 생각하자는 거예요. ‘학교는 친구 사귀는 곳이다!’, ‘학교는 친구들과 노는 곳이다!’, ‘학교는 친구를 만나러 가는 곳이다!’ 이렇게 발상을 전환해 뒤집어보자는 거죠. 학교를 가고 싶은 곳으로 만들자는 거예요. 소속감이라는 거, 굉장히 중요합니다. 인성을 키우는 건 비대면으로는 불가능해요. 만나야 가능하다는 거, 그건 즐거움이 있을 때 진정한 효과가 나타나는 겁니다.”
이 센터장은 정신건강 전문의 중 거의 유일하게 장기입원을 반대하는 인물로 유명하다. 사회 속에서 지내야 치유가 된다는 것, 치료는 외래진료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지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실천해 왔기 때문에, 전문의 세계에서도 이단아로 불린 지 오래됐다. 그는 ‘인문학적 상상력’이 정신건강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청소년들의 자살문제를 논의할 때 제가 말했어요. 인문학적 상상력을 청소년들한테 주자고. 시험을 폐지하고 자유롭게 시를 쓰게 만들자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지만, ‘말도 안 된다’는 전제가 인문학적 상상력을 처음부터 가로막는 거예요. 재미있는 사례를 말씀드릴까요? 제가 지리산 종주를 할 때 정말 힘들게 능선을 오르고 있었는데, 저만치에서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이 높고 험한 산 위에 무슨 아이들 소리? 너무 신기해서 자세히 살펴보니까, 저쪽에서 초등학생들이 줄지어 어울리며 이쪽을 향해 신나게 걸어오는 거예요. 산청초등학교 5학년생들이래요. 그 애들을 한참 쳐다보다가 내려오는 길에 깨달은 게 있었죠. ‘아, 저 아이들한테 지리산은 동네 뒷산이구나!’ 이런 깨달음과 발상의 전환이 바로 인문학적 상상력이고 그 실천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이영문 센터장은 자살자의 자살원인을 ‘모른다’고 답한다. 당사자가 아니면 그 누구도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교과서는 이미 죽은 지식이기에, 진정한 산 공부를 하고 싶으면 교과서를 덮고 환자분께 직접 물어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이 센터장의 ‘거꾸로’ 생각하기가 관료적인 처방에 매몰돼 있던 대한민국 정신건강 영역에 커다란 전환을 불러일으키기를 기대한다.
<함께걸음>에 영화 소개를 다시 시작해줄 수 있느냐고 물으니 흔쾌히 ‘오케이!’했다. 대신 바쁜 일정에 잊어버리기 쉬우니까, 마감 전에 ‘귀찮아 졸라 달라’고 웃으며 역제안했다. 2021년, <함께걸음>은 새로운 필진을 반갑게 만나게 될 것 같다.
 
작성자최고관리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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