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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기자의 백신 접종기

박 기자의 함께걸음-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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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자주 나오는 주제가 ‘백신 접종’입니다. 어떤 백신으로 접종을 했는지, 1차인지 2차인지, 언제 접종하는지, 접종 후 이상반응은 없는지…. 사람들이 백신 접종 후 많이 아팠다거나 심지어 사망하는 뉴스도 접하게 되니까 그만큼 관심이 큰 것 같아요.
 
저도 백신 접종을 했어요. 1~2차 모두 화이자 백신으로 접종을 완료했습니다. 9월 16일에 2차 백신 접종을 완료했는데, 접종 후 2주가 지난 지금까지는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시청각장애인으로서 백신 접종을 하러 가는 준비부터 접종을 완료하는 과정까지를 돌아보면서 기록해볼까 합니다.
 
백신 접종이라는 건 처음 해보는 경험이면서 동시에 백신 접종을 하는 곳도 제가 처음 가는 곳이었어요. 비록 집에서 그리 멀지는 않지만 혼자 잘 찾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1차 백신 접종은 활동지원사든 누구든 동행해서 가길 원했던 게 솔직한 심정이지만, 2차 백신 접종도 혼자 가야 되니까 그냥 혼자 가보기로 마음 먹었어요.
 
지도 앱을 보면서 길을 찾아가는 게 저시력인 저에게는 많은 어려움이 있어서 근로지원인에게 ‘지도’를 그려달라고 했어요. 접종하는 곳까지 어떻게 찾아가면 되는지 근로지원인이 직접 수기로 지도를 그려주는 겁니다.
 
지하철 몇 번 출구에서 나온 뒤 어느 방향으로 가야 되는지, 도서관이나 교회가 나올 때까지 계속 걸어야 되고, 횡단보도를 몇 번 건너야 되는지, 건물 사이의 몇 번째 길로 가야 되는지 등 어쩌면 지도 앱에서 나오는 것보다 더 세밀하게 그려주었어요.
 
길을 가다보면 카페나 식당, 도서관, 교회 등 다양한 건물이 나오는데, 지도 앱을 보면 그걸 다 확인할 수 있죠? 그런데 제 시력으로는 그걸 일일이 다 확인하기가 어려워요. 특히 간판의 배경과 글자의 색깔이 비슷하면 알아보기가 더 힘들어져요.
 
1차 – 나쁘지 않았던 첫 경험
 
그렇게 지도를 보면서 정말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을 정도로 백신 접종하는 장소를 잘 찾아갔어요. 도착해서부터는 정말 특별히 걱정하지 않아도 되더라고요. 왜냐하면 건물 입구에서부터 백신 접종을 완료하는 그 순간까지 건물 요소요소에 자원봉사자들이 배치되어 있어서 큰 어려움없이 안내를 받을 수 있었거든요.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전 신분증을 제시해서 그날 예약된 걸 확인받고, 발열체크를 한 뒤 안으로 들어갔어요. 들어가서 백신 접종을 하러 온 서류를 작성해야 하는데, 1차 백신 접종받는 과정에서 가장 아쉬웠던 게 이 서류 작성 때였어요.
 
자원봉사자가 설명을 해주는데, 이름과 주소 등을 적고 체크하는 란의 공간이 너무 작은 거예요. 제가 보고 직접 작성하기 어려워하고 있는데, 자원봉사자가 제가 들고 있던 펜을 ‘빼앗아서’ 대신 입력을 하는 겁니다.
 
제가 잘 안 보이더라도 어디에 입력하면 되는지 손가락으로 짚어주거나, 아니면 펜을 들고 있는 제 손을 적어야 되는 공간으로 가까이 가져가줘도 되는데 ‘대신’ 해주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게 배려라고 생각했나보죠.
 
아무튼 그렇게 접수를 하고 의사 가운을 입은 사람을 차례로 두 명 만났어요. 첫번째로 만난 사람은 백신 접종에 대해, 이상 반응이 오는 경우 대처 방법 등에 대해서 설명해 줬어요. 두 번째 만난 분은 백신을 접종해 줬고요.
 
제가 백신 접종을 하러 가서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는 스마트폰에 있는 음성인식기능 앱을 사용했거든요. 그 앱을 켜두면 상대방이 폰에 대고 말하면 무슨 말을 했는지 음성으로 변환되는 앱입니다. 백퍼센트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 앱의 존재 덕분에 길만 잘 찾으면 혼자 가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을 주는 데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두 명의 의사와도 이 앱으로 대화를 나눴는데, 첫 번째 의사는 앱이 있어도 자꾸 종이에 글로 적었어요. 그것도 그냥 백지에 적지 않고 백신 접종하러 와서 작성하는 접수 서류의 여백에 하고싶은 말을 적었어요. 여백이 그리 넓지 않으니까 자연스럽게 글자도 작아지겠죠?
 
반면 두 번째 의사는 컴퓨터에 하고싶은 말을 적어서 제게 보여줬어요. 이미 컴퓨터에 띄워져 있는 백신 접종 관련 내용의 글자를 크게 해서 보여줬는데, 그래도 잘 안 보였던 제가 컴퓨터 화면에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니까 그때부터는 제 폰에 있는 앱에 직접 말하면서 설명해 줬어요. 덕분에 충분한 설명을 듣고 이해하면서 접종을 완료할 수 있었어요.
 
접종 후 따로 마련된 공간으로 이동해서 이상반응이 나타나는 건 아닌지 15분동안 기다렸어요. 먼저 ‘15분’을 측정하는 기계를 받았는데, 거기에 있는 숫자를 제대로 확인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시간이 좀 지나서 그 기계의 숫자가 나와있는 부분을 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확대해봤는데, ‘00:00’으로 나와있네요? 시간이 전혀 지나가지 않았다는 거죠.
 
아마도 그 기계를 받고 자리에 앉는 과정에서 제가 그 기계의 어느 부분을 누르는 바람에 기계가 작동하지 않게 된 것 같았어요. 당시에 앱으로 대화를 하느라 폰도 들고 있고, 가방과 서류도 들고 있어서 손이 좀 분주(?)했거든요.
 
그래서 기계의 어느 부분들을 요리조리 만져보면서 사진을 찍어서 확인해보고 하다가 시간을 시작하게 하는 방법을 알아냈어요. 결국 저는 15분이 아니라 한 20분은 더 앉아있다가 특별한 이상반응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귀가할 수 있었어요.
 
 
 
2차 – “내가 할 수 있어요.”
 
혼자 1차 백신 접종을 다녀온 경험은 제가 2차 백신 접종을 하러 가는 데에 1차 때보다 뭐랄까, 심리적인 안정감을 가져다 준 것 같아요. 한번 다녀왔으니까 지도가 없어도 혼자 갈 수 있을 정도로 길을 알게 되었고, 백신 접종을 하는 과정도 다 알게 되었으니까요. 역시 경험이 중요한 것 같아요.
 
1차 접종 후 6주가 지나서 2차를 접종하러 갔으니까 자원봉사자들이 1차 때와는 바뀌었겠죠? 1차에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을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제가 2차 접종에서 만났던 자원봉사자들은 다 새로운 얼굴들이었어요.
 
2차 백신 접종에서는 1차 때 만났던 자원봉사자들과 비교하면 진짜 적극적인 자원봉사자들이 저를 안내해줬어요. 서류 작성부터 백신 접종 후 대기하는 과정까지, 정말 과분할 정도로 엄청나게 적극적인 자원봉사자들이 저와 함께해 줬어요.
 
먼저 서류 작성을 위해 만난 자원봉사자는 제가 직접 작성을 어려워하자 백지에 제가 글로 적으면 그걸 자원봉사자가 대신 적어주겠다고 했어요. 저는 그렇게 했고, 서류에 서명하는 부분에만 제가 직접 서명하면 되어서 편했어요.
 
서류 작성을 마친 후 다음 장소로 가려고 하는데, 서류 작성을 도와줬던 그 자원봉사자가 앞장서서 먼저 가더라고요. 그 자원봉사자가는 자기 자리에서 다음 백신 접종자에게 서류 작성 안내를 해줘야 할 텐데, 굳이 같이 안 가줘도 된다고 했지만 같이 갔어요. 그리고는 서류를 받아서 접수하는 곳의 담당자에게 저에 대해서 다 말해줍니다. 뭐라고 말하는지 제가 들고 있던 폰에 그대로 음성으로 변환되었어요.
 
“이분 잘 안 들리시고 잘 안 보이시는데 여기 폰에다 말씀하시면 다 나와요. 그럼 다 이해하세요.”
 
그렇게 서류를 등록하고 이제 백신 접종을 하러 갔어요. 이번에도 백신 접종에 대해 설명해주는 의사, 백신을 접종해주는 의사를 각각 만났는데, 이 두 의사는 앱을 바로 이해하고 소통을 해준 덕분에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어요. 저도 궁금한 걸 물어보고 하면서 그렇게 접종을 완료했어요.
 
이제 마지막으로 15분 대기하면 끝이겠죠? 그런데 백신 접종 완료 후,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만난 자원봉사자의 지나친 적극성이 제 얼굴을 찌푸리게 만들었어요. 저는 가만히 있는데 제가 들고 있는 폰에 계속 문자로 변환되어 글이 나오더라고요.
 
“선생님 이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선생님 선생님 제가 해드릴게요. 선생님 제가 도와드릴게요.”
 
사실 백신 접종 후 15분 대기하는 곳은 접종한 곳의 바로 옆에 있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찾기 어려운 것도 아닐뿐더러 복도에 다른 자원봉사자가 대기하고 있기도 하니까 굳이 그렇게까지 도와주지 않아도 되는 거였죠. 또 제가 전혀 안 보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자꾸 제 팔을 붙잡고 이끌 듯이 갈려고 하니까…. 결국 한 마디 했지요.
 
“제가 혼자 할 수 있어요.”
 
조금 쏘아붙이듯이 한 마디 했는데, 정말 적극적으로 안내해주던 그 자원봉사자는 갑자기 풀이 죽은 것처럼 기세가 한풀 꺾인 것 같았어요. 그리고는
 
“아 네...”
 
라고 말하며 한발 물러났어요. 어차피 이동한 곳에는 다른 자원봉사자가 대기하고 있기 때문에 그 자원봉사자는 본래 자기가 안내하던 곳으로 돌아갔어요. 이번에는 처음부터 제대로 확인하면서 정확하게 15분을 대기한 뒤 귀가했어요.
 
후기 – 계속 나아졌으면
 
1,2차 백신 접종을 하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백신 접종하는 장소 입구부터 자원봉사자들이 배치되어 있다는 겁니다. 저처럼 시청각장애가 있는 입장에서는 안내해주는 자원봉사자의 존재가 든든했죠.
 
물론 너무 적극적으로 안내해주려는 마음이 앞서서 굳이 해주지 않아도 되는 행동까지 하는 자원봉사자도 있었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만족해요. 자원봉사를 위해 온 사람들이니만큼 그 사람들이 나쁜 건 아니니까요. 또한 그곳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저 외에 다른 장애인도 만나게 될 수도 있으니 자원봉사자들에게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는 유익한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다만 자원봉사자들에게 장애인이 왔을 때 안내나 지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을 좀 더 깊이있게 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어떻게 의사소통을 하고 안내를 해야 하는지 아주 기본적인 정도만 안다면, 지금보다 장애인이 더욱 편하게 백신 접종을 하러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시청각장애인인 제가 혼자서 두번의 백신 접종을 다녀오면서 이런 생각도 했어요.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요. 2차 백신 접종에서 적극적이었던 자원봉사자는 장애에 대한 감수성을 가지게 된다면 정말 훌륭한 자원봉사자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고요. 앞으로 게속 발전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작성자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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